'한산' 감독판, 복제물과 2차적저작물의 경계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 23. 선고 2023가합44526, 2023가합59436 판결
1. 사실관계 및 당사자의 주장
2022년 7월 27일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출현’(이하 ‘한산’)은 2014년 ‘명량’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7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원고(쿠팡 주식회사)는 피고(롯데컬처웍스 주식회사)와 영상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여, 국내에서 ‘한산’을 독점적으로 전송·공중송신 할 권리를 확보했다. 사용료는 총 125억이며, 이 중 1차로 50억원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2022년 10월, 피고가 ‘한산 리덕스’(이하 ‘감독판’)를 만들어 다른 OTT에 제공할 가능성을 밝히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원고는 이 사건 계약의 독점적 지위를 근거로, ‘감독판’이 다른 플랫폼에 제공되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12월 2일 ‘감독판’은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원고는 ‘중대한 의무 위반’이라고 반발하며, 12월 21일 계약 해지 의사를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하였다.
반면 피고는 ‘감독판’이 ‘한산’과는 ‘별개의 저작물’이므로,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원고의 독점적인 권리는 ‘한산’에 한정되며, 2차적저작물 작성에 관한 제반 권리는 피고에게 여전히 유보되어 있다는 것이다.
2. 법원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감독판’은 ‘한산’의 ‘2차적저작물’이 아니라 ‘복제물’에 불과한바, ‘감독판’을 다른 OTT에 제공한 것은 ‘원고와의 계약상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법원도 기존 씬들의 순서 내지 배치가 변경되고 약 21분 분량의 영상이 추가된 사실은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작품의 전개, 주요 사건, 인물 묘사, 분위기, 결말 등에 실질적인 변경이 없는, ‘부수적인 수정·증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창작성’이 없다며 피고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이에 피고의 귀책사유로 계약은 해지되었으며, 기 수령한 사용료 50억 원 전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3. 평석
가. 2차적저작물의 창작성
계약 해석과 약관법 위반 등에 대한 다툼도 있으나, 본 사건은 ‘감독판’의 ‘2차적저작물’ 해당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또는 그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말하는데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저작권법 제5조 제1항). 즉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에 종속된다는 점과 새로운 형태의 창작성이 부가되었다는 두 가지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데, 본 사건에서는 전자에 이견이 없으므로 ‘창작성’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대중가요를 컴퓨터용 음악으로 편곡한 것을 2차적저작물로 인정한 판례에서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어야 하는 것이며, 원저작물에 다소의 수정·증감을 가한 데 불과하여 독창적인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는바(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도863 판결), 사소한 개변을 넘어서는 새로운 창작적 표현을 찾아봐야 한다. 대상 판결에서도 바로 이 대법원 설시를 인용하고 있다. ‘감독판’에서는 약 10분 내외의 분량이 재배열되었고 약 21분 분량의 영상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사소한 수정·증감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여 ‘새롭게 부가된 부분의 창작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된다.
최근 AI 산출물의 저작물성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작성의 판단 기준은 늘 쉽지 않은 주제였다. 특히 2차적저작물에 대해서는 미국 하급심에서 일반적인 저작물의 창작성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기준을 요구한 판례가 존재한다(Gracen v. Bradford Exchange, 698 F.2d 300 (7th Cir. 1983), 이른바 ‘오즈의 마법사 사건’). 우리 하급심에서도 “2차적 저작물이 되기 위하여는 보통의 저작물에서 요구되는 창작성보다 '더 실질적이고 높은 정도의 창작성'이 요구” 된다는 판시도 발견된다(서울고등법원 2002. 10. 15. 선고 2002나986 판결, 이른바 ‘뮤지컬 녹화 사건’). 하지만 일반 저작물의 창작성과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Gracen 판결을 변경한 것으로 평가받은 ‘장난감 제품 사진 사건’에서 다른 저작물과 동일한 수준의 창작성으로 충분하다고 판시하였으며(Schrock v. Learning Curve International, Inc., 586 F.3d 513 (7th Cir. 2009)), 최소한도의 창작성(minimal originality)만 있으면 파생저작물(derivative works)이 될 수 있다는 판시도 유명하다(Weissmann v. Freeman, 868 F.2d 1313 (2d Cir. 1989)). USCO의 Compendium에서도 파생저작물의 등록 요건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창작성이 필요하다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독일 역시 2차적저작물의 창작성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법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우리 법원은 2차적저작물이 되기 위한 ‘개변(改變)’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광화문을 축소한 모형을 2차적저작물로 인정하면서, ‘지붕의 성벽에 대한 비율, 높이에 대한 강조, 지붕의 이단 구조, 처마의 경사도, 지붕의 색깔, 2층 누각 창문 및 처마 밑의 구조물의 단순화, 문지기의 크기, 중문의 모양 등 여러 부분에 걸쳐 사소한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변형을 가한 것’이라는 판시를 한 바 있는데, 창작성의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대법원 2018.5.15. 선고 2016다227625 판결, 이른바 ‘광화문 모형 사건’).
나. 21분의 추가 분량, 새로운 장면·인물의 등장
피고는 ‘감독판’의 제작비로 제작사에 8억 5천만 원을 지급하였다. 상당한 시간을 투여하여 ‘감독판’을 완성한 김한민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감독판’은 단순한 확장판이 아니라 ‘감독이 생각하는 결정판이자 완결판’이라고 밝히면서,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일반 영웅들의 이야기, 왜군 장수들의 갈등과 야욕을 폭넓게 다뤘다’며 그 차이점을 설명한다.
단순히 러닝타임만 보더라도 ‘한산’보다 무려 21분 15초가 더 길다. 영상저작물은 카메라 구도의 선택, 필름 편집, 그 밖의 제작 기술로 표현되는 창작성이 존재하면 저작물로 인정된다(서울고등법원 2012. 6. 13. 선고 2011나52200 판결). 동일한 시나리오라도 영상화 과정에서 창작성이 발현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 지방법원은 연극을 녹화한 영상을 파생저작물로 인정한 바 있다(National Broadcasting Co., Inc. v. Sonneborn, 630 F. Supp. 524 (D. Conn. 1985), 이른바 ‘Peter Pan 사건’). 더불어 ‘감독판’에서는 공격당하는 와카자카 함대나 돌진하는 신형 구선 등 상당한 수준의 해전 CG 보완이 이루어졌는데, 영화의 시각적 특수효과(VFX, Visual Effects) 역시 창작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왜군 가토의 전사 장면, 어머니와의 대화씬 등 11장면은 아예 새로 추가된 것이다. 권율 장군, 이순신 어머니 등은 ‘감독판’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영화에 새로운 인물·장면을 추가하는 것이 2차적저작물의 창작성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함부르크 고등법원(Hanseatische Oberlandesgericht)의 판결은 참고가 된다(GRUR 1997, 822 (825), Edgar-Wallace-Filme-Entscheidung, 이른바 ‘에드거 윌리스 영화’ 판결).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2차적저작물’이 아닌 단순 ‘복제물’로 판단하였다. 그 논거를 상세하게 판시해 주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
4. 결어
2차적저작물은 본래 원저작물의 ‘복제’를 수반한다. ‘감독판’에서 ‘한산’의 본질적인 특징이 감득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복제물과 2차적저작물의 경계는 ‘새로운 창작성’ 여부에 있다. 엘스터(Elster)의 작은 동전론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위대하거나 중요해야만’ 저작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늘어난 영상, 새로운 인물과 장면들에 대해 모두 최소한의 창작성조차 부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미 저작권법 전문서 커디스(Curtis)에는 배열·선택·기획·조정 등을 저작물 작성(form)의 뜻으로 쓰고 있다. ‘감독판’에서는 19장면이 변형되었고, 배경음악도 조정되었다. 영화는 어문저작물, 영상저작물, 음악저작물 등 다양한 저작물이 결합된 복합적 성격의 저작물로, 구성요소의 선택·배열 등의 조합을 고려하여 창작성 여부를 판단한다. 전체적 맥락에 대한 언급도 필요하다. 극저작물에 있어 부분적 비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과거 2차적저작물의 영역은 번역 형태에 불과하였다. 번역권을 둘러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이해충돌에서 발생된 이른바, “저작권의 남북문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2차적저작물의 높아진 위상은 구름빵 사건, 검정고무신 사건 등의 불공정 계약 논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대상 판결은 영화 감독판의 2차적저작물 해당 여부를 다투는 최초의 사건으로, 학계에도 의미있는 선례가 될 것이다. 현재 이 사건 판결은 피고 측이 불복하여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충실한 검토와 논리적 설명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최진원 교수(대구대 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