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이자 역사에 정통한 정극원 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가 대구의 대표적인 평생교육 현장을 찾아 역사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교수는 28일 대구 수성도서관 내 대구사회문화대학(학장 이종환)에서 열린 제2494회 강연에 초빙돼 ‘역사기행 왕과 사는 남자’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펼쳤다. 이번 강연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조선 제6대 왕 단종과 그를 끝까지 보필한 충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본질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날 강연에서 정 교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배경이 된 1457년 영월 유배지에서의 단종 죽음을 언급하며, 영화 속 허구와 실제 역사의 차이점을 세밀하게 짚어냈다.
특히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에 주목했다. 정 교수는 영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엄흥도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와 그의 숭고한 충의를 설명하며 수강생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엄흥도의 묘소가 영월이 아닌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있다”는 정 교수의 설명에 참석한 수강생들은 놀라움과 함께 큰 반응을 보였다.
정 교수는 헌법학자로서의 통찰을 바탕으로 권력의 근본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계룡산 동학사 숙모전에서 단종의 초혼제를 올렸던 매월당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덕망이 없는 자가 권력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령은 하늘의 명령인데, 천명이 떠나고 민심을 저버리면 어찌 스스로 한 몸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정 교수는 이 구절을 통해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극이 오늘의 삶 속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준엄한 지침이자 미래를 여는 나침반”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역사는 곧 국가의 존재 그 자체”라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태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강연이 열린 대구사회문화대학은 1990년 효목독서대학으로 출발해 올해 창립 36주년을 맞이했다. 대구의 어르신들이 평생 배움을 실천해 온 대표적인 실버대학으로서, 이날 정 교수의 강연 역시 수많은 수강생이 자리를 가득 메워 변치 않는 학구열을 입증했다.
강연에 참석한 한 수강생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할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며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나라의 미래라는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고 소감을 전했다.